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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 가을을 보내는 법시(詩)/이명윤 2016. 5. 1. 15:18
홀아비 최가 저 양반 막걸리 단지 채 마시더니 군청 마당 쌓은 나락에 불을 지르고는
다시는 농사짓나 봐라 시펄놈들 다 때려치울 듯 서슬 한번 퍼렇더니
언제 쟁기 들고 들에 나갔노
그 많던 소 새끼 다 팔아 치우고 달랑 저 눈만 멀뚱멀뚱 늙은 소 남아 짠한 마음에
죽은 지 마누라보다 더 아껴준다며 외양간도 다시 고치고 늘 싱싱한 풀만 골라 멕이고
요리조리 씻어도 준다며
저것 봐라
뒤에 가는 최가가 미안타 미안타 하니
앞에 가는 늙은 소가 괜찮소 괜찮소 하네
한 줄 또 한 줄 논두렁을 밀고 가네 툭 불거진 돌부리에 취기가 걸려 넘어져도 뒤집힌
벼 밑동 마다 흙 가슴이 춤을 추면 또 냉큼 일어나 뚜벅 뚜벅 걸어가네
늙은 소가 서면 최가도 서고 최가가 가면 늙은 소도 가네
멀리 소방차 사이렌 소리 들려오고 억센 쟁기가 설움을 뒤집고 가네 꾸역꾸역
가을의 눈빛들을 밀치고 가네 서늘한 바람이 논두렁을 휘돌고
서산 해가 뒤뚱뒤뚱 떠밀려 가네
(그림 : 양경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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