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윤 - 항남우짜시(詩)/이명윤 2016. 5. 1. 15:10
당신은 늘 우동 아니면 짜장
왜 사는 게 그 모양인지
시대적 교양 없이 물어보지 않을게요
그래요, 그래서 우짜라구요
우동이냐 짜장이냐
이제 피곤한 선택은 끝장내 드리죠
짜장에 우동 국물을 부어 태어난 우짜
단짝 같은 메뉴끼리 사이좋게 가기로 해요
화려한 풀코스 고급요리 식당이 진을 친 항남동
눈치 볼 것 있나요 뒷골목 돌아
친구처럼 기다리는 항남우짜로 오세요
꿈틀대는 이마 주름에 꾸깃한 작업복
당신도 면발계층이군요
면발처럼 긴 가난을 말아 올려요
입가에 덕지덕지 짜장웃음 바르고
우동처럼 후루룩 웃어 보세요
후딱 한 그릇 비우고 큰 걸음으로
호주머니의 설움을 빠져 나가야죠
달그락 우동그릇 씻는 소리
가난한 날의 저녁이 달그락 달그락 쉴 새 없이 몰려와요
아저씨 또 오셨네요, 여기 우짜 한 그릇이요
꼬깃한 지폐 들고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선 얼굴
어쩌겠어요 삶이 진부하게 그대를 속일지라도
오늘도 우짜, 웃자, 라구요.
항남우짜 : 통영시 항남동에 위치한 분식집. 우동과 짜장을 섞어 만든 우짜메뉴로 유명하다.
(그림 : 이혜진 화백)
'시(詩) > 이명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윤 - 가을을 보내는 법 (0) 2016.05.01 이명윤 - 일용직 정씨의 봄 (0) 2016.05.01 이명윤 - 당신의 골목 (0) 2016.01.27 이명윤 - 누룽지 (0) 2016.01.25 이명윤 -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0) 2014.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