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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 당신의 골목시(詩)/이명윤 2016. 1. 27. 21:03
그곳이 지도에 없는 이유는
햇볕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죠
얼굴을 맞댄 오래된 집들은
그 자리에서 늙어가죠
혹자는 부질없는 집착이라고 하지만요
골목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
가끔은 누가 볼까 휘파람을 불지만
소리는 그림자를 춤추게 하죠
꿈틀꿈틀 일어나는 기억,
슬금슬금 쫓아오는 골목, 뒤돌아보는 당신,
허름한 창문 틈새로 슬픔이 불빛처럼 새어 나오고
개 짖는 소리에 골목이 가늘어져도 두려워 마세요
골목의 병명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아요
늘 웅크려 자는 당신
오래된 골목 하나 품고 사는 당신
십년 혹은 이십 년 전 어디쯤
쓰러져 있는 당신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골목아, 라고 불러보세요
골목은 엎어져도 골목,
무르팍이 깨어져도 또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가고 있지요 무심하게도
다시 뒤돌아 걷지 않는 한
골목은 쉽게 끝나지 않지요
몇 번이고 다시 방영하는 드라마처럼.(그림 : 이민부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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