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봉교 - 벌 나다시(詩)/서봉교 2016. 2. 13. 17:07
그 놈들은
한창 바쁜 5월 모심기때
꼭 달아났지
품앗이로 얻은 일꾼들이 못줄을 튕기며
맨손으로 모를 심을 때쯤이면
가스도 전기도 없는 시커먼 부엌에서
제누리로 칼국수를 삶던 어머니가
고무신이 다 벗겨지도록 달음박질로
논으로 기별을 가야했으니
진흙 덕지덕지 붙은 맨둥발로
한 걸음에 달려온 아부지가
참나무 껍질로 만든 벌통 두껑에 꿀을 바르고
약쑥을 꺾어
새 식구를 달래는 소리
장수야 낮게 날아라
장수야 낮게 날아라
신기하게 그놈들은 벌통으로 들어가는
행운 아니 행운도 있었지만
열에 넷이 상은 석청을 만들러 병창으로 도망을 갔으니
부애가 잔뜩 오른 아부지가
지푸라기에 불을 당겨 몇 번이고
화형식을 하려던 마음을 삭이고 삭혀서
벌은 서른 통으로 불어났지만
해 마다 이맘때만 되면
고양이 손도 아쉬운 농사철에
자꾸만 살림을 나겠다는 녀석들을
얄미워만 할 수 없는 일
장수야 낮게 날아라
장수야 낮게 날아라
아부지랑 여왕벌의 끝나지 않는 대화는
아직 현재 진행형인데.
(그림 : 김선순화백)
'시(詩) > 서봉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봉교 - 목욕탕에서 (0) 2016.05.19 서봉교 - 주천장 가는 날 (0) 2016.02.14 서봉교 - 새벽 해장국집에서 (0) 2016.02.14 서봉교 - 설날 마누라랑 장보기 (0) 2016.02.14 서봉교 - 막걸리를 마시다 (0) 201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