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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만 - 군산 일박(一泊)
    시(詩)/박일만 2016. 1. 27. 22:28

     

     

    달려가던 평행선 끝에서
    시린 무릎 적시고 있었지
    언덕에 누운 당신의 모습은 젖무덤 같았어
    높던 파도는 허리 낮춰
    기관지 앓는 목선들을 토닥이고
    만선을 꿈꾸다 지친 깃발들 창밖을 서성이고
    격랑이 지나간 후, 숨결 고르는
    등 뒤에서 쓸쓸한 어깨로 돌아눕던 항구,


    한세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몸으로 사는 것은
    바람에 물어뜯긴 깃발의 흉터처럼
    끝내 지울 수 없는 쓸쓸함의 흔적일 뿐이라며
    이불 끝을 당겨 더욱 어두워지던 항구,


    풍랑에 단단해져버린 시린 등뼈가 아무리
    물에 젖어도 침묵으로 사는 것이 사랑이라 했지
    물먹은 듯 무거운 일생을 부려놓고
    두 무릎 단단히 끌어안고 모로 잠을 청하던 항구,


    기다림도 떠남도 이젠 익숙한 삶이라 했지
    기댈 어깨 한 사람 만나지 못하고 살다가
    떠나는 것일까 우리는,


    문득, 눈발이 소금처럼 언덕에 내려
    당신의 무덤을 환하게 밝힐 때쯤
    눈물조차 인색한 내 생이 부끄러워 서둘러 떠나왔던 항구,


    당신이 죽어 그렇게 떠난 뒤,
    장항 물길건너 지척인 그 자리
    그대, 편히 잠들었는지 궁금한
    일박(一泊)

    (그림 : 홍인순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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