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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미 - 분홍을 기리다
    시(詩)/조용미 2016. 1. 7. 20:00

     

     

    산그늘 한쪽이 맑고 그윽하여 들었더니 거기 키 큰 철쭉 한 그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엷은 분홍빛 다섯 장의 통꽃들 환하여 그 아래 잠시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지요

     

    그들의 이마를 어루만지니 열꽃이 살며시 번졌습니다

     

    이른 봄꽃들 지나간 봄 숲을 먼 등불처럼 어른어른 밝히고 있는

    그 여린 분홍빛에 내 근심을 슬쩍 올려놓고 바라보아요

     

    실타래처럼 쏟아져 나온 열 가닥 꽃술은 바람이 없는데도 긴 속눈썹을 가늘게 떨고 있어요

    떨어진 분홍빛들은 가만히 그 자리에서 빛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 애기나리들이 연둣빛 솜 방석을 깔고, 내려온 분홍빛들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나는 애기나리들의 낮은 데 있는 그 마음을 받쳐줄까 하여 오래 고개 숙였지요

     

    내 앉은 나무 아래 분홍빛은 모여들어 봄은 또 이곳에 잠시 머뭇거립니다

     

    가까운 개울물 소리도, 산비둘기 울음도, 쓰러져 누워 푸릇푸릇 이끼를 껴입은 벚나무 푸석한 가지들도

    모두 저 꽃의 분홍을 기리기 위해 이 숲에 온 듯합니다

     

    저 고요한 분홍이, 숲의 물소리를 낮추고 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 알게 되었어요

    그 분홍빛 아래서 당신은 또 한나절 나를 견뎠겠습니다

    (그림 : 안모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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