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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미 - 적벽에 다시
    시(詩)/조용미 2015. 7. 31. 14:01


                                                                                                                                     (낭송 : 조용미) 

      

     

    적벽 오고 말았습니다,

    물염정 아래 호수의 물은 말라 수면이 여러 겹 물염적벽 아래 떠다닙니다

    당신은 흐르는 강물 따라 다녔겠지요

    망향정에 와 노루목적벽 마주 보며 흔들리듯 서 있으니

    수수만년 전의 당신이 나를 여기 보냈다는 걸 알겠습니다

    적벽 와서야 허전한 한 목숨 겨우 이어 붙였다는 느낌은

     

    나는 가장 맑은 눈으로 적벽 보려 합니다

    물염적벽, 노루목적벽, 망미적벽, 창랑적벽, 이서적벽……

    적벽의 이름들 안타까이 구슬처럼 입안에서 꿰어봅니다

    무덤에 업힌 듯 박혀 있는 부서지고 나뒹구는 석탑이 절터임을 말해주지만

    호수의 물과 파헤쳐진 대숲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기억을 방해하고 간섭합니다

     

    당신도 한동안 적벽의 풍경을 몸 안에서 구하였던 것은 아니겠지요

    어느 생에선가 미묘란 무엇이냐 물었더니 당신은,

    바람이 물소리를 베갯머리에 실어다 주고 달이 산 그림자를 잠자리로 옮겨준다  말했습니다

    여러 생을 통과하면서 혹 미묘가 맑아져 표묘가 되기도 하였는지요

     

    찬연함이 얇아져 처연함이 되는지 나는 이 시간에 오롯이 놓여 적벽에 쓸쓸히 물어봅니다

    내 몸을 입고 나온 어떤 이도 적벽 흐르는 강물 바라보며

    미묘와 표묘를 아득한 눈빛으로 중얼거리게 될는지요

    수수만년 전 적벽을 보았던 게 누구인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생에선가 나는 다시 적벽 와야 하겠지요

    흐르는 구름과 적벽에 물드는 단풍을 바라보며 오래 거듭되는 환(幻)의 끝을 물으며 서 있어야겠지요

    후생의 어디쯤에서 나는 나를 알 수 있을까요

    풍문도 습관도 회환도 아닌 한 사람의 지극한 삶을,

    향기와 음악처럼 두루 표묘하여 잡을 수도 알 수도 없는 간결한 한 생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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