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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구름 저편에시(詩)/조용미 2015. 8. 8. 22:16
현산면 백포리, 여기까지 왔다
윤두서 고택 용마루에 기러기 한 마리 오래 앉아 있다
기러기는 움직이지 않는 기러기다
움직이지 않음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저 방식이 불편하다
망부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이곳 바다 내음이 인다
오갈피나무 검은 열매를 혓바닥에 물이 들도록 따 먹었다
모래가 살결보다 고운 송평에서, 꽃이 지나간 자리 같은 작은 새 발자국 따라 멀리 가본다
막다른 길에 바다가 서 있다
당두리 갈대숲이나 연구리의 살구나무 한 그루 노하리의 가지 부러진 노송이 새겨져 있는 내 몸은
티베트 사자의 서처럼 단번에 읽을 수는 없는 책과 같아서
다만 어란, 가학리, 금쇄동 하고 낮게 불러보는 지명들
다 끌어안고 다니며 길을 앓는다
나를 뚫고 지나가는 풍경들이 또 나를 앓고 있는 길 위, 몸에 미열이 인다
어불도 앞 책바위에 와 나는 내 안의 길을 다 쏟아놓는다
풍경들은 나를 잘 읽지 못한다
(그림 : 안영목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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