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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겨울의 질척거리는 밤거리시(詩)/심재휘 2015. 12. 13. 13:57
낯설은 거리였다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재앙이 오기 전에 서둘러 대문에 못질하듯
사람들은 투명한 발소리를 내며 걸었지만
겨울의 거리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주 쉬웠다
돌아보면 눈 내리는 풍경이 따라왔다 그러면
누구나 폭설을 예상한다 하지만 간혹
운명의 한 귀퉁이 벗겨진 칠 사이로
자신을 닮은 한 사람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을
볼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골목을 수없이 거느린 밤의 거리로 접어든다
한 거리가 다른 거리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곡절에 대해 자시히 알 필요는 없지만
저 골목을 돌면 그 골목을 돌아나오는 나를
딱 마주칠 것 같아 걸음을 멈춘다
건널목의 신호등은 호객꾼처럼
곳곳의 골목을 음산하게 비추고 있다
나는 찬 손을 쉽게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구두에 쌓여 녹아 가는 눈을 내려다본다
나무들이 제 가지 끝의 침묵에 이르는 길을
곰곰히 생각해내느라 가로수 어둠에 묻힌 거리
쇼윈도에 진열된 고려당 애플파이 앞에서
겹겹이 쌓인 시간 앞에서 오늘밤 나는
조문객처럼 눈을 맞는다(그림 : 권대하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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