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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그 빵집 우미당시(詩)/심재휘 2015. 12. 13. 13:49
나는 왜 어느덧 파리바게트의 푸른 문을 열고 있는가.봄날의 유리문이여. 그러면 언제나 삐이걱 하며 대답하는 슬픈 이름이여.
도넛 위에 떨어지는 초콜렛 시럽처럼 막 익은 달콤한 저녁이 내 얼굴에 온통 묻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달지가 않구나
그러니까 그 옛날 강릉 우미당을 나와 곧장 파리바게트로 걸어왔던 것은 아닌데젊어질수도 없고 늙어질수도 없는 나이 마흔 살.
단팥빵을 고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이제는 그 빵집 우미당,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아침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은 이미 이별한 것.오늘이 나에게 파리바게트 푸른 문을 열어 보이네. 바게트를 고르는 손이 바게트네.
그러면 식탁에서는 오직 마른 바게트, 하지만 씹을수록 입 안에 고이는,
그래도 씹다 보면 봄날 저녁 속의 언뜻 언뜻 서러움 같은,
그 빵집 우미당, 누구에게나 하나씩 불에 덴 자국같은
(그림 : 나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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