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관 - 비오는 날이면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시(詩)/전영관 2015. 11. 25. 18:07
비오는 날이면
마지막 열차를 타고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
젖은 몸으로 하늘 향해 나란히 누워 손짓하는
침목(枕木)과 침목들
지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그 간이역까지
함께 떠나고 싶은 코스모스의 행렬을 데리고
차창 밖 어둠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떠나고 싶다.
하루에 몇 차례씩
긴 하품처럼 기적이 울리면
배웅해 주는 사람, 마중 나온 사람 없는 대합실
썰물처럼 어쩌다 한 두 사람 문을 밀치고 나가면
대합실 밖에서 기다렸다는 듯 달려 들어오던 빗소리
지금쯤 열차는 어느 역을 떠나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오고 있을까?
잊는다는 것은
마지막 목례도 없이 헤어진
그 사람의 이름까지도 모두 잊어야
정말 잊어지는 것이라고,
이별한다는 것은
뒷모습을 돌아 보지 않아야
정말 이별하는 것이라고
대합실에 어둠이 내리면
추억처럼 하나 둘 등불이 켜지던 그곳
기약 없는 만남의 준비를 위해
이처럼 설렘으로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비오는 날이면
마지막 열차를 타고 그 간이역에 가고 싶다.
대합실 창에 어깨를 기대고 눈을 감으면
보일 듯 보일 듯 추억처럼
멀리 파란 시그널이 밤 새워 기다리는 그 곳
텅 빈 대합실 의자에 앉아 아직 오지 않는 막차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림 : 이순자 화백)
'시(詩) > 전영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영관 - 느릅나무 양복점 (0) 2016.09.24 전영관 - 파랑주의보 (0) 2016.09.21 전영관 - 오전리 구씨아저씨 (0) 2015.11.25 전영관 - 네거리에서 (0) 2015.11.25 전영관 - 바람난 달 (0) 201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