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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달자 - 국물
    시(詩)/신달자 2015. 8. 3. 22:38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그림 : 김경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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