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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달자 - 선지해장국
    시(詩)/신달자 2015. 7. 8. 23:19

     

     

     사내가 근질근질한 등을 숙이고 걸어갑니다
    새벽까지 마신 소주가 아직 온몸에 절망을 풍기는
    저 사내
    욕을 퍼마시고 세상의 원망을 퍼마시고
    마누라와 자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퍼마시다가
    누구를 향해 화를 내는지 두리번거리다 다시 한잔
    드디어 자신의 꿈도 씹지도 못한 채 꿀꺽 넘겨버린
    저 사내
    으슥으슥 얼음이 박힌 바람이 몰아치는 청진동 길을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걸어가다가
    바람처럼 '선지 해장국' 집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야릇한 미소를 문지르며 진한 희망 냄새 나는
    뜨거운 해장국 한 그릇을 받아 드는데
    소의 피, 선지 한 숟가락을 물컹하게 입 안으로
    우거지 한 숟가락을 들판같이 벌린 입 안으로
    속풀이 해장국을 한 번에 후루룩 꿀꺽 마셔버리는데
    그 사내 얼굴빛 한번 시원하게 불그레합니다


    구겨진 가난도 깡소주의 뒤틀림도 다 사라지고
    속 터지는 외로움도 잠시 풀리는데
    아이구 그 선지국 한 그릇 참 극락 밥이네
    어디서 술로 밤을 지새운 것일까 구석진 자리
    울음 꽉 깨무는 한 여자도
    마지막 국물을 목을 뒤로 젖힌 채 마시다가
    마른 눈물을 다시 한 번 문지르는데
    쓰린 가슴에 곪은 사연들이 술술 사라지는데
    여자는 빈 해장국 오지그릇을
    부처인 듯 두 손 모으고 해장국 수행 끝을
    희디흰 미소로 마무리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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