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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진 - 추석이 낼 모레시(詩)/시(詩) 2015. 6. 18. 10:48
흥보의 마음이 이랬을까
추석이 낼 모레
박 다섯덩이는 따서 내 지게에 지고
서너 발 됨직하게 캐 담은 고구마는
어머니 흰 머리에 이고 집에 왔는데
박을 타던 내 옆에서 지켜보던 큰 놈이
우리는 왜 장에 안 가냐 하고
둘째 놈도 덩달아 졸라댄다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것이 명절이란다
남들과 똑같은 게 좋을 것 없지
일손을 놓고 달래보는데
오늘따라 하늘이 더욱 푸르고
추석이 낼 모레
아내가 쓸어 놓은 정한 마당에
감나무 이파리만 떨어진다
이 박을 타거들랑 우리 꽃님이 운동화 한 켤레와
간조기 몇 마리
또 이 박을 타거들랑 어머니 양말 한 켤레와
우리 아루 때때옷 한 벌만 나와 줄랑가
나는 어느덧 노래를 불렀는데
아니다, 아니다
매운 연기 속에서 고구마를 찌시는 정정한 내 어머니와
조르다 조르다 저들끼리 놀고 있는 내 딸들
이런 순간만이라도 오래 오래 있게 하여 달라고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그림 : 안호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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