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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 - 꽃을 말리며시(詩)/시(詩) 2015. 6. 19. 00:05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동생이 벽에 걸어놓았다
말려놓고 보아도 독특한 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매달린 꽃송이들이 내겐 영 마음에 걸린다
안쓰러워 물 몇 방울 얹어주었더니
그늘에서 물기 없이 오래 말려야 그 태가 좋다고
내 손의 물컵을 낚아채며 동생은 난리다
만개하다가 꽃답게 떨어져 죽는 일도 쉽지 않구나
가늘게 남은 생명이 검게 변하면서 오래오래 죽어 가는 모습
나의 하루도 어디선가 줄기가 잘리고 어디엔가 매달려
천천히 죽어 가는 것은 아닌가
물 한방울 피 한방울 남지 않고, 나는
지금 얼마나 꼬득꼬득 잘 말라가고 있는가
불현듯 목이 마르다(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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