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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천 - 마흔 살 너머, 새벽 기차
    시(詩)/정윤천 2015. 6. 11. 11:48

     

     

    <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기차역에 나가 정하지 못한 불명의 목적지와 혹은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는 먼 곳의 심로를 향하여, 매표구 앞에 스스로 언 손을 내밀고, 어쩌면 그리워질지도 모르는 무망한 행선지를 떠올려야 하는 일은 더는 갈수록 쉬운 행위는 아니리라. >

      

    이른 기차는 대개 먼 길을 달려와 그 기인 동체며 차창에 성에꽃 하얀 누비 옷을 입고 있기 쉽상이다마흔 살 너머, 한 새벽의 기차 기차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일로 들고나는 것이겠지만 누군가는 더러 이 나이의 기차를 오르며 왠지 마음에 간직했던 내의(內依)같은 것이라도 한 벌꺼내들고 싶어지는 것이어서

     

    그리하여 사는 일이 어쩌면 길고도 오랜 먼 길의 배회였거나,추운 거리를 지나 역에 닿는 발걸음이 또한 단지 기차에게만 주어진 쓸쓸한 배역만은 아니었음을 갑자기 눈치 채거나 짐작해보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런 사이 문득 순간의 정지를 마치고 나면 기차가 내재한 심상치 않은 속도에 실려, 사라져 갈 창 밖의 풍경들에언뜻 눈을 맞추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렇게는 마침내 누구에게나 한번씩은 찾아오게 될 저 마흔 살 너머의 서늘한 역사(驛舍) 뾰족한 지붕 너머로 지난 날의 깊은 환기와도 같은 기적이 울리기도 하는 때그리하여 어쩌면 기차보다 빨리 가는 마흔 살 너머 ......한때는 참으로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기차에 오르기도 했던그만큼 절실했거나 간곡하기도 했던 사라져간 시간의 기억의 이정표(里程標)들을 가로질러

     

    이제 기차는 새벽 물빛을 가슴에 담은 호숫가 곁이거나 환한 아침의 풍경들이 은빛 교감을 시작하는 신생의 대지 위를 지나쳐 갈 때에 이르면 이미 서둘러서 많은 것들을 소진해 버리고 나왔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마흔 살 너머, 시린 미명의 여정 저쪽으로 비끼는 바람결의 함성들을 일으켜 세우며 그래도 아직 스러지지 않은 청춘의 불꽃의 흔적이나마를 향해 성성한 질주의 머릿채를 흔들어 대며 기차는, 새벽 기차는 달려가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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