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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만나고 헤어진 말들이 있었다
어떤 말 앞에서 난 막무가내로 흔들렸다
그것은 전생에 잊어버린 말이었다
어느 말 앞에서 오래오래 서성거리기도 했다
거기엔 잃어버린 마음이 새겨져 있었다
어느 말 앞에선 그만 주저앉기도 했다
거기엔 내일이면 흩어질 내 쓸쓸한 영혼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 뿐인가, 어느 낯선 말 앞에선 입술을 깨물며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저 세상까지 지고 가야 할 말이었다
요즘 난 억지 말을 퍼 나르다가 버리곤 한다
오늘은 무지렁이, 를 써놓고 버렸다
못묘, 를 쓴 뒤 몇 줄을 더 긋다 버리기도 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땅강아지처럼 흙에 붙어사는 말만 찾으니
그것은 죽은 말
어울리지 않아서 이내 튕겨져 나갈 말이었다
나 죽어서도 지게사전 지고 가야 한다
아직은 못다 한 말 너무도 많다
핏빛 지문 더 찍어야 한다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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