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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 - 오래된 바위시(詩)/시(詩) 2015. 5. 27. 11:04
나가 바위여.
딱 한 번은 굴러야 할 천길 벼랑 위 바위랑께.
뒤집어서 속을 볼 생각은 아예 하덜 말아라잉.
내 황홀한 눈물의 세계는 죽어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께.
발바닥 지문을 따라 질게질게 집을 지어놓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개미들이야
내 살을 파묵고 사는 피붙이들이제.
따땃한 아궁이라도 깔고 앉았는지 어쨌는지 지렁이란 놈은 움직이지도 않어야.
내 안에서 귀뚤귀뚤 우는 소리 들리거든 지도 한번 울어보고 싶었겄제, 허고 생각해주소.
핏기 한 점 읎이 내 발목아지나 붙들고 있는 허어연 실뿌리는
두 눈 멀건히 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시야.
그라도 지금껏 버틴 건 습기 속에 감추어진 그놈들의 뜨거운 숨결이
내 온몸으로 밀고 올라오니께 그란 것이제.
나가 바위여.
딱 한 번만 굴러볼 요량으로 이 악물고 견디는 바위랑께.
(그림 : 김상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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