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완 - 신기료 할아버지시(詩)/시(詩) 2015. 5. 26. 12:58
걸어가시라 신발 해진 이 기워 신고
넘어야 할 고개 몇 개라도 넘으시라
아직은 아무도 이르지 못한 땅끝으로
거기 당신네들 발길이 헤맬지라도
땅끝까지 안심하고 걸어가시라
무딘 송곳, 밀 먹인 실, 허리 굽은 귀 큰 바늘
키 작은 구두못 여기 모두 모였으니
당신네들 안심하고 걸어가시라
떠돌며 십 년 주저앉아 십 년
굽은 등에 햇살받고 다시 몇 년 기약 없이
다리 부러진 돋보기로 지내 온 길 돌아보니
돌자갈 가시밭길 험하기도 하여라
이 세상 모든 신발이여 앞길 또한 그러하나
새 신보다 헌 신이 발 편한 줄 아시라
닳은 뒷굽 갈아 대고 터진 앞창 기워 신고
당신네들 갈 길로 걸어가시라
걸어가시라 개오릿들 건너 샛말 지나
두고 온 우리 동네 고샅길 꺾어 돌아
왼쪽으로 세 번째 집 머무를 곳 거기
못 가는 사정 아는 이 없어도 서운치 않으니
사과 궤짝 위 낡은 구두 몇 켤레여
먼지와 해으름과 눈꼽과 잔기침과
그런 것 아랑곳말고 걸어가시라
(그림 : 송준일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봉옥 - 오래된 바위 (0) 2015.05.27 김창완 - 우리 옆집 그 여자 (0) 2015.05.26 김창완 - 막금도(莫今島) 사공 (0) 2015.05.26 김광렬 - 그리움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 (0) 2015.05.25 강해림 -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0) 201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