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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양지쪽에서
한줌 흙으로 만족했던 인생!
모래성(城)을 쌓아 놓고도
천하를 호령하는 성주
나는 언제나 왕자였네.
나이 들어서는
한송이 꽃을 바라보며
남몰래 가만히 한숨 쉬는 버릇
보랏빛 노을을 사랑했고,
아버지가 된 지금은
왜무시 크듯 쑥쑥 크는 새끼들 보며
주름살로 소슬히 웃는 버릇
씁쓰름한 소주로 목을 축이네.
파랑새를 찾으러 간
그날의 소년은 돌아오지 않고
저 산 너머 멀리
행복을 찾아간 소녀도 돌아오지 않고
어쩌다 보면
춘향이 뒷모습 같은 나의 아내
마흔일곱살이 너무 아쉬어
짐짓 나이를 두 살 줄이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적당히 취하네.
아 무지개를 바라보면
아직도 내 가슴은 뛰는데……
(그림 : 이상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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