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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병란 - 하동포구(河東浦口)
    시(詩)/시(詩) 2015. 5. 21. 12:28

     

     

    유행가 가락 따라

    나도 모르게 왔네

    빈 호주머니 노자도 없이

    엿판도 못 짊어진 전라도 사나이

    삼학(三鶴)소주 한잔에 취해서 왔네

     

    하동포구 80리에 빈 모래사장만 눈부시고

    발자국도 없이 쫓겨온 사나이

    눈부신 햇살에 갇혀 길을 잃었네

    무슨 알뜰한 옛사랑의 맹세도 없이

    삼천포(三千浦) 아가씨의 설운 눈물도 없이

    덧없이 부서진 마음 모래알로 빛나는데

    어디서 누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옷소매 잡는가

     

    눈부신 한낮이 길게 누워 있는 나루터

    주인 잃은 빈 배만 흔들리는데

    눈물을 씹어봐도 한숨을 씹어봐도

    쓴맛 단맛 알 수 없는 설운 내 팔자

    하동포구는 아직도 울고 싶은 곳이더라

    하동포구는 아직도 사나이 옛정이 목메는 곳이더라

     

    돈타령 팔자타령 사랑타령

    한잔의 막걸리만 남은 땅에서

    어느 문둥이가 손톱을 뭉개다 간 모래밭에서

    알알이 빛나는 모래알을 적실

    무슨 짭짤한 눈물이나 남았던가

     

    모래밭 속에 몹쓸 이름 깊이 묻으면

    추억은 소주처럼 저려오는 눈물

    두 주먹 불끈 쥐고 땅을 쳐봐도

    뻘밭에 오줌을 철철 갈겨봐도

    무심한 햇살만 남아 있더라

    빈 소주병만 남아 있더라

    환장하게 환장하게

    눈부신 모랫벌만 지글지글 타더라

    (그림 : 정의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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