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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을 떠나는 그대의 누더기 옷자락 사이로
해인사 가을바람 한 줄기 낙엽처럼 빠져나가고
참나무 연기 뼈와 살을 태우며 계곡을 맴돈다
어느 고요한 날 저녁 무렵 둠벙에서 연꽃 피어나듯
오동나무 높은 가지에서 오동잎 하나 뚝 떨어지듯
무심히 돌아왔다가 훌쩍 떠나버리는 그대여
대웅전 앞 석등에 불이 켜질 때마다
목탁 도끼로 패어 불바다 만들려고 안했나
내가 죽어 참나무 장작 위에 자빠졌다고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건 아니지?
석가는 큰 도적이고 달마는 작은 도적이니
나는 도적놈들 밑씻개나 만드는 땡추여
29는 18이요 씨팔은 두 아가리가 맞붙어야지?
두견새 우는 골에 흩어지는 붉은 꽃이여
저승문 앞에 선 그대의 검정고무신 사이로
해인사 가을낙엽 한 줄기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녹두알 좁쌀만한 똥고집만 누리처럼 하늘을 덮는다
천하 잡놈 잡년들 불두덩에 굵은 서캐로 남아서
백련암 뒷산 소나무 가지에 송충이로 태어나서
훌쩍 떠났다가 무심히 돌아오는 미운 그대여
(그림 : 장필홍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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