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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어서 좋았다
때 묻은 작업복으로 돌아갈 때면
가로등 불빛만이 슬금슬금 따라올 뿐
어둠은 노곤한 눈빛을 감춰주었다
기억할 만한 일은 없었다
구멍 난 생을 메우듯
종일 몇 개의 나사를 터지지 않게 밀어 넣는 것으로
하루는 지나갔다
속옷에 찬 땀이나 닳아빠진 지문으로도
들뜬 하루가 지나갔다
자동차 불빛이 가끔씩 비칠 때면
버거운 생을 애써 숨기고 있는
초라한 등이 드러났다
뒷모습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조립라인도
어느 해 떨어져나간 손가락 두 개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용케도 알아보고 말없이 지나쳐갔다
밤을 사는 부나방처럼
미숙한 조립공이 가외로 던져놓은 등외품처럼
나는 어두운 길옆으로 자꾸만 밀려나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꿈은 커지지 않았고
서툰 귀가는 긴 밤을 놓지 못해 버둥이고 있었다
(그림 : 송금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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