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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곤 - 아버지의 지게시(詩)/시(詩) 2015. 5. 15. 18:00
이 길을 나서면 숨이 차다
아버지는 이 길을 걸어
새벽별을 친구 삼았다
당신의 새벽길 뒤에서 피어나곤 하던 어린 보리싹 향기가 난다
오동꽃 피던 봄날, 한 번은 아버지의 발대지게에 올라앉아
깔끄막을 올랐다
오동꽃 밑을 지나며 움출움출 춤을 추어도
등 굽은 당신은 말이 없었다
괭이 호미 걸어놓은 헛간 구석에
깡마른 지게 하나
거기 오래 전 아버지가 끌고 온 추레한 깔끄막도
먼지 쌓인 채 누워 있다
깔딱 숨 넘어갈 것 같은 지게의 무게 벗어던지고
싶었겠지만
자식들을 위해 아픔으로 져야 했던 지게
두 어깨로 가난의 무게를 지고 다니셨다
오살헐, 깔끄막을 오르내리며
곡진한 밥그릇을 져 나르셨다
한 생, 질곡의 지게를 지고 걸어가셨던 길이
끊어진 지 오래
먹먹한 발자국 소리만 한 짐이다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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