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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 수국꽃 비를 맞는다
수국꽃 위에만 도착하는 비
칠월의 긴 손가락이 수국의 창백한 뺨을 두드린다
비에다 제 뺨을 온전히 내어주고 있는 수국
눈물을 가두어둔 듯
비는 흘러내리지도 못하고 꽃잎에 갇혀 있다
수국이 울고 있다
벽에 이마를 대고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해
수국의 눈썹이 저렇게 떨리고 있다
눈물에 이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몸부림을 쳤나
쏟아지는 비에 수국은 파리하게 젖어간다
나는 저 어린 꽃에게 다가가 살며시 우산을 씌워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다들 화려한 꽃세상 같지만
어디선가 간장같이 짠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눈물은 상처에 바치는 공양이다
비가 그치고
수국꽃에 연등처럼 불이 들어온다
(그림 : 이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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