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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 달달한 쓴맛시(詩)/시(詩) 2015. 4. 29. 22:10
엿을 먹었네
꿈결인 듯 앞산 너머 뻐꾸기가 울면 철걱철걱 엿장수가 가위를 쳤네
아무리 아껴 먹어도 할머니 흰 고무신은 금세 녹았고 어머니의 부지깽이는 오래 쓰라렸네
소쩍새는 밤이 깊도록 훌쩍거렸네
정수리의 딱지나 떨어졌을 국민학교 오학년 땐가
방앗간 머슴이 빨리던 풍년초 몇 모금은 몽롱했네 주제도 모르는 머슴 놈 편지 심부름에
얼척없다, 옆집 누님은 시퍼렇게 나를 꼬집었네
알사탕은 달다 못해 쓰기만 했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책상 앞에 앉아 질끈 머리를 동여매었지만 열매는커녕 꽃 한 번 보지 못했네
세월은 가슴엣피를 하던 막내고모의 약단지에서 골라낸 감초만도 못했네
허나, 호락호락한 적 한 번 없던 세월이 엿 먹이지 않았다면 빈속에 강소주 맛을 내 어찌 알았겠는가
소주가 엿처럼 입에 쩍쩍 달았다면 삼십 년도 넘게 물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환갑에 알겠네, 이 달달한 쓴맛을
(그림 : 이영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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