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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 허리를 굽혀시(詩)/이준관 2015. 4. 12. 18:29
들길을 걷다가 허리를 굽혀
길에 떨어진 벼이삭을 줍는다.
들녘에 지는
긴 해 그림자를 밟고 서서
나는 벼이삭을 들여다본다.
벼이삭 하나에도 감사할 게 참 많은데
나는 그 동안 너무 감사한 마음을
잊고 살아왔다.
가난한 어린 시절,
들녘에 떨어진 벼이삭을 주워
치마폭에 담아오던 어머니.
따스한 저녁 불빛이 되어주던
어머니가 주워온 벼이삭.
문득 내 손에 쥔 벼이삭이
늙은 어머니의 틀니처럼 무거워진다.
들머리에 엎드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사람들.
아버지의 괭이가 그러하듯
어머니의 호미가 그러하듯
나는 겸허하게 허리를 굽힌다.
들녘 사람들을 향해.
벼이삭 하나를 향해.(그림 : 김명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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