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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 - 만경강 하구시(詩)/이준관 2015. 4. 12. 18:31
만나자.
만날 테면 만경강 하구에서 만나자.
만나면, 우리는 머나면 서해 바다가 된다.
숭어잡이에서 돌아온 배에서
지느러미가 푸른 숭어를 보자.
숭어야, 비안도 앞바다의 푸른 파도는 잘 있는가.
보름달 뜨면 알을 까러 바닷가로 몰려나오던
게들은 잘 있는가
마늘을 뽑는 아낙네들이 강을 바라본다.
물빛을 닮은 그네들의 눈 밑까지 강물이 넘실대고,
갈대뿌리를 쪼아대던 물새떼들이 강물을 차고 날아 오른다.
아낙네들의 등적삼이 파랗게 젖는다.
무당집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서러웁게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무당집 딸.
낮달 속에 숨은 무당집 딸.
서러운가? 서러우면 밥풀꽃 속에 코를 묻고
미치도록 강물 냄새를 맡아라.
슬픔은 저 혼자 깊어져 강바닥에 닿아라 하자.
바지락을 캐고,
고기 대신, 새우 그물에 노을을 뜨는,
낮은 처마에 불을 켜는 사람들.
만나자.
만날 테면 만경강 하구에서 만나자.(그림 : 이진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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