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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탁번 - 감자밭
    시(詩)/오탁번 2014. 12. 21. 18:39

     

     

    흙냄새 향기로운 감자밭 이랑에
    하양 비닐을 씌우는
    농부 내외의 주름진 이마에는
    따사로운 봄볕이 오종종하다
    서방은 비닐을 앞에서 끌고
    아낙은 뒤에서 그걸 잡고 있는데
    비닐 끝을 흙으로 덮기도 전에
    자꾸 앞으로 나가니까
    소를 몰 때 하듯이 아낙이 말한다
    -워워!
    그 말을 듣고
    서방이 씩 웃으며 한마디 한다
    -워, 라니?
    흙을 다 덮은 아낙이 말한다
    -이랴! 이랴!

     

    신방에 들어가는 새댁처럼
    가지런한 감자밭 이랑은
    물이랑 되어 찰랑이는 비닐을
    비단 홑이불처럼 덮고
    제 몸을 어루만져주기를 기다린다
    농부 내외는
    바소쿠리에 가득한 씨감자눈을
    비닐을 뚫고 하나하나 꾹꾹 심는다
    멧돼지와 고라니들이 내려와
    감자를 반나마 나눠먹을 테지만
    주먹만한 감자알을 떠올리며
    새흙을 덮어 다독여준다
    감자밭 이랑은
    아기를 잉태한 새댁처럼
    다소곳이 엎드린 채
    감자알이 여무는
    하짓날 긴긴 해를 꿈꾸고 있다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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