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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환 - 꽃끼리 붐비다
    시(詩)/오탁번 2014. 9. 5. 09:50

     

     

     

     

    ―원서헌 뜨락에서

     

    5월을 앞뒤해서 원서헌 뜨락은,

    샛바람 난간에 거문고처럼 기댄 옥매부터 금입사한 애기 손톱,

    물기슭의 어리연까지, 그래봤자 풋내나 풍기는 것들로 샅샅이 북새통이다 거기다가 청개구리 물두꺼비 소리나,

    곤줄박이에다 비비새 딱따구리 등속의 새소리라도 곁들이면 손을 쓸 지경이 아니다

     

    잇바디를 간조롱히 드러내고 시치미떼는 금낭화는 또 그렇다 치고,

    부싯돌 불찌처럼 떼로 엎질러지는 수수꽃다리도 가관이다

    울섶에 노박이로 선 조팝나무는 살강 가득 고봉밥에 식은밥 선밥 대궁밥까지 하냥 매나니로 쟁여 놓았다

    희끗희끗 갓털 타고 뛰어오르는 서양민들레 홀씨는, 민물게 幼生과 김지이지로 어슷비슷한데,

    함초롬한 어귀 별꽃 두어 송이는 하릴없이 아궁이 속 불잉걸만 뒤적거린다

    채홍사 치고는 입성이 두메발톱만한 게 없겠다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국화 땅나리가 해찰하며 딴전만 피운다

     

    할미꽃은 고수련고수련 하면서 冊曆을 한 금 두 금 잘도 읽어 내리고,

    민소매 란제리 바람의 두메양귀비는 암술 수술을 무슨 해사한 별자리처럼 반짝이며 여태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다

    물달맞이꽃 낮달맞이꽃이 냉골로 식은 윗목에서 찰랑찰랑 뒷물하는 사이,

    靑華로 귀밑머리를 치장한 현호색은 새물내 띄우며 외출준비에 분주하다

     

    싹싹한 꽃창포를 시누로 둔 수련도 버겁기는 매한가지다

    해껏 물낯을 다리고 시침질하고 가위로 오리는 소금쟁이며 게아재비며 물방개 등쌀에는 애면글면 귓불만 밝힐 도리밖에 없다

    반물 들인 도라지꽃 근처 고사목 같은 청석 어름에서,

    바위솔네는 벌써부터 맑은 물결무늬消印으로 참 쬐끄만 집성촌을 일으켰는데,

    능소화는 한데서 바람결을 따라 찰파닥 찰파닥 울금빛 비지똥만 지르며, 말짱 아랑곳이라곤 없다

     

    흥청망청 지리멸렬, 순 아사리판으로 붐비는 원서헌 뜨락이라면, 어차피 손을 쓰기에 글러먹었다

    원서헌 : 세월이 지나 변하는 것이 많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고향이다.

    오탁번 시인의 시 중에는 그런 변하지 않는 고향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시인이 태어난 곳은 천등산 박달재로 유명한 충북 제천의 백운면 평동리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그 당시의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였다.

    이후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는 시골마을의 아이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가더니 그만 폐교가 되었다.

    그렇다고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학교를 다녔던 수많은 졸업생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탁번 시인은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으로도 모자라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 현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곳이 원서헌이다

    (그림 : 노숙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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