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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 땅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시(詩)/김영남 2014. 11. 25. 11:53
땅을 기어가는 것들에는
기둥에 붙들어맬 수 없는 고집이 있다.
황토밭을 달리다가 잠시 뒤돌아보는 고구마 순,
벽을 기어오르며 허공에 내미는 담쟁이손,
이것들에게는 허리가 꺾이고 발목이 묶이더라도
오로지 가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근성이
무섭도록 꿈틀댄다.그 구불구불한 줄기를 들치면
대나무 뿌리 같은 손이 있고,
그 손 속에
들녘으로 나가는 어머니
호미자루가 쥐어져 있다.
꺾인 자리를 지우며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 펴는 새순 속에는 또
얘야, 손발이 부르트도록 땅을 뒤져 네게 올려주마 하시던
고무 신발 같은 말씀이 달리고 있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묵은 순 속에는
딱딱한 매듭으로 남거나 삭정이로 부러지는
줄기의 마지막 모습이
아프게 숨어 있다.땅을 기어가는 것들,
절벽을 기어오르는 줄기들에는
어둔 싹들을 이 세상으로 업어낸
아름다운 등이 있다.(그림 : 강연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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