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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림 - 조반 들었냐시(詩)/허림 2014. 10. 16. 17:54
아침 일찍 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지으십니다
광 항아리에서 쌀을 퍼오셔서 절미 항아리에 한 줌 덜어놓고
이남박에 쌀을 씻고 두 번째 뜨물을 받아 무국을 끓이고
무쇠솥에 쌀을 안칩니다
어머니 손은 마디마디 얼음이 들어 빨갛게 부어 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그제야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 앉아
언손을 녹이며 감자를 깎아 밥솥에 넣고
식은 화로를 뒤적거려 불씨를 골라 구멍쇠를 질러놓고
무국 냄비를 얹어 놓습니다
김치 곽에서 시금털털한 배추 한포기를 꺼내
썰어 놓고 밥이 뜸들 때를 기다려 솥이며 부뚜막을 닦습니다
무 냄새 밥냄새가 들창문을 넘을 때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걷어 탈탈 텁니다
갑자기 들어친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며 수돗가로 나갑니다
그새 어머니는 방안을 훔쳐내고 드디어 아침밥상이 들어옵니다
밥을 먹다가 전화를 받아든 내 입속으로
어머니의 밥상이 들어왔습니다
(그림 : 김우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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