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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림 - 흙담길을 걷다시(詩)/허림 2015. 5. 4. 14:37
오래된 바람이분다
망우 지고 아버지 밭으로 나가시고
들밥 이고 어머니 논으로 나가신다
그림자와 땅뺏기 하다가
은숙이가 소꿉놀이하자고 조른다
흙담장 아래 햇살 받아 살림 차린다
나는 남자라서 아빠가 되고
너는 여자래서 엄마가 된다
무엇이 행복했는지 웃는다
웃다가 어른처럼 싸우고
싸우다가 어머니처럼 울고
흙담장 아래 쪼그리고 앉으면
오래된 바람은 따뜻하다
눈이 자주 내렸다
아침이면 길과 맞닿은 모든 길은 환히 열렸다
흙담장 너머 달 뜨고
백 번이 넘는 계절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취해서도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는 자주 흙담장 아래
다 풀린 실타래마냥 앉아 계신다
오래된 바람이 분다
(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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