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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록 - 숟가락
    시(詩)/이정록 2014. 9. 25. 17:32


    작은 나무들은 겨울에 큰단다 큰 나무들이 잠시 숨돌리는 사이,
    발가락으로 상수리도 굴리며 작은 나무들은 한 겨울에 자란단다
    네 손등이 트는 것도 살집이 넉넉해지고 마음의 곳간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큰애야, 숟가락도 겨울에 큰단다 이제 동생 숟가락들을 바꿔야겠구나
    어른들이 겨울 들녘처럼 숨 고르는 사이, 어린 숟가락들은 생고구마나
    무를 긁어 먹으며 겨울밤 고드름처럼 자란단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복(福)자가 쓰인 숟가락 세 개를
    방바닥에 내놓으신다
    저 숟가락이 겨우내 크면 세 자루의 삽이 될 것이다

    쌀밥을 퍼올리는 숟가락처럼 나무들 위에 눈이 소복하다 한 뼘 두 뼘
    커오를 때마다 나뭇가지에서 흰눈이 쏟아지고 홍역인 듯 항아리 손님인 듯
    작은 새들이 날아간다

    하늘이 다시 한번 털갈이를 시작한다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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