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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는 정작 방년(芳年)이란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자흔(刺痕)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芳年) 아니겠나?
꽃이란 게, 향과 꿀을 퍼내는 출문이자 열매로 가는 입문이라
나도 고개 돌려 법당마루에 오체투지하고 싶네만
마른 주둥이 훔치는 햇살 천년 바람 천년,
법당 마당의 싸리비질 자국만 돋을새김하고 있네.
그렇다네, 이 문짝에 염화가 없다면
어찌 어둔 법당에 미소가 있겠는가?
풀경 소리며 목탁 소리에도 나이테가 있는 법,
날 쓰다듬고 가는 저 달빛 구름그림자처럼
씨앗 쪽으로 잘 바래어 가시게나.(그림 : 이혜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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