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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비닐하우스시(詩)/박성우 2014. 8. 31. 23:08
시골집 수돗가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설 쇠러 시골집에 내려온 나는
문이 비스듬히 열린 비닐하우스에 들어
돼지감자 볶아 끓인 물을 마신다
손바닥 밭이 되기도 하고
곳간이나 방이 되기도 하는 이 비닐하우스는
낮에는 노모와 참새가 쓰고 밤에는 고양이가 쓴다
지난 늦가을에는 집 나온 동네 오리 서너 마리가
비닐하우스 안을 조져놓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노모가 소일할 때 깔고 앉는 방석이 놓여 있고
참새를 위한 왕겨와 깻대 묶음이 쌓여 있다
낮에도 개지 않는 헌 이불은 골목 고양이의 것이다
천장 아래쪽에 걸쳐진 장대에는
지푸라기로 묶은 메주가 익어간다
소쿠리에 담긴 씨 옥수수는 이가 야무지고
가장자리에 심어진 쪽파와 대파는 줄기가 튼실하다
노모가 앉는 방석에 앉아 볕을 쬐다 보니
청상추 같은 졸음이 몰려온다
자울자울 기분 좋게 몰려오는 잠을
비닐하우스 밖, 까치가 쪼아댄다
은행나무에 앉은 까치는 둥지를 수리하고 있다
한 마리는 총총걸음으로 망을 보고
다른 한 마리는 나뭇가지를 덧엮느라 부지런 떤다
뒷머리 긁적긁적 자리 털고 일어난 나는
방석을 들고 나와, 졸음과 함께 탈탈 털어본다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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