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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동그라미시(詩)/박성우 2014. 2. 24. 23:35
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동그라미가 된다
동그라미가 되어 동그라미 안에 갇히고
동그라미가 되어 동그라미 안을 가둔다
안데 갇히고 안을 가두는 발 빠른 동그라미가 된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속 빈 동그라미가 되고 속 없는 동그라미가 된다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반경의 동그라미가 되고
그러나 가장 크지 않는 동그라미가 된다
시작선도 끝선도 없이 그려지는 동그라미,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가 잽싸게 들어가면
동그라미 밖의 동그라미는 나울나울 동그라미가 되고
동그라미 안의 동그라미도 나울, 동그라미가 된다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웅덩이의 엉덩이에 둥글납작 엎드려 퍼지는 동그라미,
고인 빗물이 되어 사라진 수많은 동그라미 위에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키운다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있는 힘껏 빨리, 있는 힘껏 멀리, 있는 힘껏 힘차게
동그라미를 그려 제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웅덩이가 된다(그림 : 김용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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