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선태 - 서산동 할매집
    시(詩)/김선태 2014. 8. 4. 13:36

     

     

    서산동 언덕빼기 보리마당에는 칠순 할매가 간판도 없이

    막걸리를 파는 집이 하나 있는데요.

    이곳에서 한번 술잔을 기울인 사람은 다시 안 오고는 못 배기지요.

     

    대체 술맛이 어쩌길래 그리 허풍을 떠느냐고요?

    온금동과 이웃한 서산동은 목포에서 소문난 달동네.

    짜디짠 가난에 절인 섬사람들이 뭍으로 건너와 제비집 같은 집을 짓고

    배도 타고 부두 노동도 하며 깃들어 사는 곳.

    요즘엔 보기에 근천스럽다고 재개발 지역으로 낙인찍힌 곳.

    허나 폭폭한 삶 너머 풍광만큼은 죄 없이 아름다워서 한국판 몽마르트 언덕이 따로 없지요.

     

    낮이면 목포 앞바다와 다도해가 한 폭 수묵화로 펼쳐지고

    밤이면 애옥살이 집들이 켜든 자잘한 불빛들이 눈물 글썽이지요.

    그 모습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무담시 짠하고 막막해져서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도리 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지요.

    해질녘 섬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노을은 또 어떻고요.

    이러니 풍광을 곁들여 마시는 술맛이 서럽도록 황홀하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그 맛에 한번 길들인 사람이면 시시때때 할매집이 눈앞에 삼삼해서

    워매워매 그 징하디 징한 깔크막을 헉헉대며 기어오를 수밖에 없으니

    이만 하면 그냥 쓰잘데기 없는 허풍이라고 타박하진 않겠지요.

    (그림 : 이정순 화백) 

    '시(詩) > 김선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선태 - 산에 들에  (0) 2014.11.22
    김선태 - 길  (0) 2014.11.22
    김선태 - 구부러지다  (0) 2014.05.21
    김선태 - 남녘江  (0) 2014.05.14
    김선태 - 땅끝에서의 일박(一泊)  (0) 2014.05.1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