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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규 - 아버지의 감나무시(詩)/양문규 2014. 7. 18. 00:01
비탈진 밭둑가에 감나무를 심는다
뿌리가 실한, 등이 반질반질한
올곧은 놈들 골라 심는다
아버지는 그 감나무에 기대 걸으며
남은 생을 마칠 것이다
감나무는 자라 바람에 흔들리면서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맑은 햇살에 잎을 반짝이며
다디단 가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채 꽃을 피워 열매 맺기도 전
아버지 고단한 육신 내려놓을지 모른다
흙과 더불어 일생을 살아온
일흔두 살의 아버지 감나무를 묻는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몸은 가난했으나 한없는 마음으로
자식인 양 눈물 주며 감나무를 키울 것이다
돌아가는 길 하늘이 아니라
감나무로 다시 태어난다는 걸
오래전부터 온몸으로 알고 있던 아버지
가을날 굵고 실한 열매로 남고 싶은 것이다
바람에도 곧잘 부러지는 여린 잔가지
태연히 끌어안고 하늘을 떠받치는,
아버지 낡은 뼛속에는 감나무가 자란다(그림 : 이상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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