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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마다 내버리듯
남은 인정을 널어놓고 떠나던 길,
묵은 쌀빚 받으러 가는 고향길에
노을이 탄다
수수밭머리 낯익은
눈 녹는 모습
산기슭 들판머리로
눈 덮인 노을
노을이여,
긴 겨울잠 속에 숨어 흐르는
검은 피를 가리고 핏빛
살냄새를 가리고
횟배 앓던 유년의 어지럼증을
저 빛깔들을 거슬러오는 동화여
노을 비끼는 수수밭머리
들판머리로
왜 이리 들개처럼 내딛고만 싶은가
검은 살냄새 두르고, 외로운
짐승처럼 울고 싶은가
나에게로 오는 휴식처럼
사랑처럼, 서러운
빛깔들처럼
서러운 묵은 빚 받으러 오는노을이 탄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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