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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모퉁이 빈집
바랭이풀이 토방까지
술 취한 여자처럼 쓰러져 있다
초가을 햇살이
툇마루에 걸터 앉는다
누가 보든 말든
두엄자리 옆 호박잎들은
넙죽넙죽 햇살을 받아 먹고
비탈길 칡넝쿨은 너풀너풀
그 햇살을 뒤적거리고
바랭이풀 함부로 쓰러진 텃밭에
팔랑거리는 메주콩잎이 띄엄띄엄 서서
연신 아는 체를 하고 있다
대숲에는 댓잎들이
보일 듯 말 듯 자디잘게
그 햇살을 쪼개 먹는데
해갈이하는 먹감나무는 온통
눈부시게 반짝거려서
드문드문 매달린 햇감을 감추고 있다
드문드문 매달린 햇살이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낯을 붉히며
도망도 못 가고 두근거린다(그림 : 박항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