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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재기 - 돌배나무
    시(詩)/시(詩) 2014. 7. 3. 21:36


     
    가을이 오는 골목에 들어
    처녀 무당(巫堂)의 가슴은 단풍빛 노을이었다.
    돌담에 몸을 의지한 채 산 아래 마을에 시선을 두다가
    토방에 가로놓인 싸리비를 들어
    공연스레 텅 빈 마당을 깨끗이 쓸어냈다
    제멋대로 흐느러지게 자란 돌담 너머 돌배나무
    노오란 돌배가 온몸으로 익어 가는데

    장맛이 좋다던 할미 무당(巫堂)은
    장독에 쌓인 낙엽을 입으로 후후 쓸어 내리고
    한 사발의 장을 퍼내어 부엌으로 들어갔다
    장대 끝에 매달린 시래기 한 두릅 씻어오라는
    할미 巫堂의 목소리가 골짜기로 골짜기로 울려 퍼졌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솔가루 타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아스라한 꿈인 듯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어디서부터인가

    입술이 붉은 처녀 무당(巫堂)은 서러웠다
    옛이야기에서처럼 어느 길손이라도 길을 잃고 찾아온다면
    아무도 몰래 한 줌의 눈물을 보여주고 싶다는 처녀 巫堂
    헛된 생각을 쫓는 듯 가로 흔드는 머리에서 머리칼이 흘러내리고
    산새라도 날아오는가, 푸득이듯 몰려오는 잘 익은 산과일 내음새

    처녀 무당(巫堂)은 돌담 너머로 팔을 뻗쳐
    필요 이상으로 많이 돌배를 따냈다
    저녁 노을은 가슴에서 두 볼에서 불붙다가 사라지고
    한숨 섞인 할미 무당(巫堂)의 목소리가 잠기는데
    바람이 이는 탓일까
    돌배나무에 매달린 돌배가 무더기로 떨어지고
    구름이 무리지는지 여느 때보다도 어둠이 먼저 몰려왔다

    (그림 : 이정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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