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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 쉬었다 가는 길시(詩)/시(詩) 2014. 7. 3. 19:54
지게를 받쳐 놓고
무논의 뜸부기 소리 한가로히 들으며
한여름 햇살 막은 그늘 아래
피곤한 몸을 쉬었다 가는 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들일을 마치고
풀잎을 건드리며 지나는 바람을
각각의 몫만큼씩
나누어 가졌던 길었다
그러나 누가 지금 다 저녁때
노을을 받으며
들녘을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제는 혼자서 걸어야 할 둑길
빈 들녘에 엎드린
슬픔을 가슴으로 쓸어안고
둑길은 할끔할끔
곁눈질로 세상을 보았다
메부수수한 눈물을 떨어뜨리고
둑길은 아름아름
찢긴 어깨죽지를 드러냈다
작은 바람 한 줄기에도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는 둑길의 풀꽃들
엷은 햇살아래
주린 배를 움켜 쥐며
아우성처럼 거슬러 오르는 피라미떼
눈물 고인 곁눈질로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저 푸르게 출렁대는 높은 하늘과
손 흔들며 마음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아슴한 걸에 둑길은 있었다(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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