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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 혼자 사랑하기시(詩)/이향아 2014. 6. 13. 18:28
짝사랑은 부치지 못한 편지이다.
썼다가는 구기고 다시 썼다 지우는 사연이다.
써 놓았다가 읽어보면 그 사연이 미진하여 마음의 반에 반도 표현되지 않아
부치지 않고 우선 내밀한 곳에 은닉해 두고 있다.
짝사랑은 되돌아온 편지일 수 있다.
수취 거절, 번지 내 없음, 이사간 곳 모름 등의 이유를 설명한 딱지가 붙어서 되돌아온 편지다.
그것은 불발탄이며 오발탄이다.
그러나 사수는 그 과녁에 적중시키는 일만을 노리지 않는다.
사격하는 일 그 자체에 오직 정성을 다한다.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이내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평생동안 신앙을 지켜나가는 신도와 같이
내 정염이 상대의 가슴에 꽂히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일, 그 자체를 평생의 과업으로 알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상 정복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야욕을 품지 않는다.
짝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를 높은 단상에 모시어 두고
자기 스스로는 단하로 끌어내려 낮출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며
사랑 때문에 입은 상처를 다른 사람의 힘에 의탁하여 치료받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상에 대하여 앙심을 품거나 증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는다.
자기를 포기하고 비하시키면서 거기서 변형된 보람을 느낀다.
자기를 발가벗기어 세워 두는, 깨끗하고 정직하며 고집 센 이런 사람이 없다면,
짝사랑이란 아름다운 관계, 힘겨운 부등식은 세상에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짝사랑은 숨어 있다. 죄악도 아니면서 죄인보다 더 큰 고통을 안고 숨어 있다.
메아리 없는 광야에서의 외침처럼 짝사랑은 의지 없이 휘청거리며 퍼져 간다.
짝사랑을 하는 자는 그 울림을 스스로의 심중에서 듣거나수십 년 후에 들으려고 마음을 먹기 때문에 외쳐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이라는 아름다운 것은 다 쇠진하고 병들어 바라볼 것이 없어져 버렸다하여도아직은 유일한 희망으로 의지하고 기대해 볼 것이 있다.
그것은 혼자 하는 사랑을 지속하는 가슴이다.
(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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