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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영 - 어머니의 장독대시(詩)/박종영 2014. 5. 18. 22:32
봄 물결 타는 초록빛,
조금은 도도하게 흔들리고
시간의 매듭이 쌓여 풍경이 되는 뒤란 대숲,
은밀하게 산비둘기 불러들여 수작을 건다
비끼는 대나무 사이 떡가루처럼 떠 있는 안갯속으로
어스름은 도둑처럼 찾아들고
강변 매화 외롭게 피어 시린 봄을 달래는 밤이면,
흙담 기댄 어머니의 장독대 그곳엔
언제나 그랬듯이 누구의 세월도 아닌
정화수 한 사발 새벽달로 차오르고,
별들은 그렁그렁한 눈물을 가득 채운다
묵주 같은 어둠의 깊이에 서성이는
정갈한 신의 영험을 한곳으로 불러 모으면서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못하고 두손 빌어
비운의 가족사를 외우는 어머니,
그토록 맨발같은 차가운 목소리는 이어지고
한 줄기 빛의 기운으로 뽀얀 달무리 피어난 그곳,
새벽으로 돌아 빙긋이 기쁨안고 승천하는 혼백이
흰밥 한 숱 깔, 맑은 술 한 모금, 음복(飮福)으로 흡족했을까?
별꽃이 움트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원은
창창한 대숲의 행간마다
푸른 바람이 멈추고 나서야 여문다.(그림 : 김봉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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