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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엽 - 물 위의 길시(詩)/이지엽 2014. 4. 8. 13:51
산과 산이 서로 허리 잇대어
깊고 험한 산일지라도
길과 만난다
말하자면 산 사이로 난 길은
모든 산의 두통과 비밀한 고뇌가 잠시 그친 곳
길은 가시덤불과 적자생존과
영역 확장의 반연을 멈추게 하여
편안하게, 산을 쉬게 하고 싶었던 거다
산수유꽃 지는 산동마을
병아리떼 오종종한 그 환한 산길을
눈빛 줄 데 없이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오래된 길의 그늘처럼 아름답다
길이 길에 연하여
끊기지 않은 길이라 할지라도
강과 만나다
말하자면 들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은
온갖 길의 보통과 꽃지는 설움이 잠시 그친 곳
강은 아픈 바퀴와 양은냄비의 삶과
질주의 광기를 멈추게 하여
그윽하게, 길을 잠기게 하고 싶었던 거다
은모래 부서지는 하동포구
모래 한줌 던지면 뛰어오르는 꺽지와 누치
그들과 은빛 얘기를 나누며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이제 갓 생겨난 햇살처럼 아름답다(그림 : 정의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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