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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엽 - 격포 가는 길
    시(詩)/이지엽 2014. 4. 8. 13:45

     

     

    노을진 바다를 끼고 달려본 사람은 안다
    에돌아간 굽이에서 바다는 왜
    매혹스런 죽음의 눈길로 우리를 유혹하는지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빛깔이 왜 자지색 울음빛이어야 하는지를

     

    그 울음빛 받아 성에꽃, 그래 성에꽃 핀다 흔종의 틈새에
    방울방울 맺히는 이슬,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리라 세상에는 눈에 박아둘
    사소한 날의 기억도 많은데 지친 한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를 스스로 뽑아내고
    한 알 검은 씨앗 땅에 묻는 일,

     

    그냥 외면한 채 서 있을 걸 그랬다 햇살 환한
    유리창 가 하얀 성에꽃, 때가 이르르면
    유리창 밖 산과 지붕의 경계가 선명해지는 것인데
    그 꽃밭의 꽃들 무엇인지 분명치 않는, 그러나 환한 꽃들의
    이름, 훈김 내지 말고 시린 손 호호 불며 서 있을걸 그랬다

     

    그래도 마음과는 상관없이 파도는 치는 것이어서
    포말로 서리서리 부서지던 날들
    비 내린 다음날 능가산 골골마다 걸리는 폭포와 같이
    쏟아져 내리던 날들, 바다 절벽에 파랗게 입술 질리던
    비릿한 슬픔이 한꺼번에 이제 차창에 와 부딪힌다

     

    노을은 이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멀리 섬들은
    벌써 노오란 불씨를 깨문다 저렇게라도 사람은
    제 하나의 희망 애써 지키고 싶은 것이다
    멀리 비안도나 그 둘레 친 고군산 열도
    갈치 은백의 빛나는 아침을 낚아 올리고 싶은 것이다

     

    손 흔들어주는 사람도 없이 백미러로
    자꾸 밀려가는 정든 말뚝의 마을,
    곰소를 지나자 젓갈처럼 푹 곰삭은 길은
    무엇이 걸리는지 또 한번 직각으로 허리를 꺾는다

    (그림 : 김성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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