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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숙 - 푸른 답장시(詩)/허영숙 2014. 2. 27. 11:57
바람이 마당에 편지를 두고 간 줄 몰랐습니다
문을 닫고 겨울을 오래 앓고 있었지요
파릇할 때 열어봐야 했습니다. 그동안
산수유가 피었다 지며
겉봉에 쓰인 당신이름 지우고
목련이 피었다 지며
내 이름이 지워진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꽃 지고 돋아난 잎이 푸르게 흔들고 있었지요
희미한 이름 자국만 당신이 내게로
내가 당신에게로 뜨거운 말, 젖은 말 동봉하여 보냈던
선명했던 지난날을 겨우 붙들고 있었지요
겉봉을 뜯자 모조리 말라 씨앗이 된
당신의 말들이 와르르 쏟아집니다
단단하게 굳는 줄 모르고 내 답장 기다리며
몇 번이고 우체통 열어보았을 당신
봄볕이 잘 드는 곳에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 자리에 몇 번은 눈물이 뿌려졌고
또 몇 차례 비도 내리더니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늦었지만
꽃 피는 대로 당신에게 부치겠습니다(그림 : 황규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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