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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영숙 - 저녁의 앙금
    시(詩)/허영숙 2014. 2. 27. 11:54

     

    산사의 종소리가 노을을 밀어올리면
    저녁의 아래에 든 꽃들은
    산화락 산화락 눕고, 사람들은
    팽팽했던 시간의 무릎을 접어 바닥에 가부좌를 튼다

    하루가 남기고 간 어둠
    생의 입자를 물고 흔들리든 것이 가라앉아 이룬
    저 묵직한 고요

    가라앉는다는 것은
    이토록 고요하고 이슥할 때 이루어진다
    시간이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선명하게 갈라놓고 난 후에
    비로소 바닥에 닿는 것이다

    쇳물의 붉은 혼이 쏟아질 만큼
    아프게 떨며 소리를 멀리 보낸 종(鐘)일수록
    제 몸 가라앉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너도 저녁이 오고 한참 뒤에야 가라앉았다
    저녁의 등뼈를 짚고
    쏙독새가 기억의 늑골 근처에 와서 울어도
    꽃잎 몇 장 떨어져 어둠에 포개졌을 뿐
    이미 쏟아내고 없는 격렬의 시절
    그 아래 굳어 버린 너를 무엇으로도 흔들지 못한다

    바닥에 압화가 되고 있는 꽃잎이,
    모든 윤곽을 지우며 낮게 번지는
    이 저녁이
    아무런 아픔 없이 혼자 가라앉았겠는가 하고
    바닥에 이르른 것들에게 물으면
    별들이 내 눈속에 축축한 지층을 이루며
    울컥울컥 가라앉는 것이다
    산화락(散花落) : 꽃을 뿌리며 불덕을 찬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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