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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영숙 - 죽선
    시(詩)/허영숙 2014. 2. 27. 11:50



    속없어 보여도 저미면 뼈가 여럿입니다
    뼈와 뼈를 선지(扇紙)로 묶으면 서늘한 숲이 생기지요

    한여름의 폭염
    그 후방에 나 앉아 포개진 댓살을 펼쳐 흔들면
    숲에서 찬바람이 일제히 몰려오는 것인데
    그럼 바람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지
    허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요한 듯 보여도 수많은 바람이 살고 있지요

     

    댓살을 흔들 때 흩어지거나 포개지면서
    대 안에 숨은 서늘한 그늘을 베껴내며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인데
    댓살이 차고 시원한 바람을 몰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고비를 넘을 때마다
    마디 속에 생긴 그늘 때문이지요


    마디는 다시 한 생애를 밀어올리고
    곧은 생애에 또 한 마디가 자라나고
    그늘은 그때 생겨나 댓살에 스미지요
    밀려나면 또 다시 몰아오고
    빙글빙글 바람을 돌리는 댓살 속에
    고비도 없이 한 시절 그럭저럭 고요하게 건너가는
    나의 지루한 문양을 그려 넣으면
    바람을 접고 또 접어 내 어깨를 후려쳐 줄까요

    (그림 : 박연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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